[338호] 이성우 위원장 칼럼 / 국제 노동 기준에 관한 이해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18-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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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이 1조5308억 달러로 세계 1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경제규모로 봐서는 최근 10년간 1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으니 어느 나라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후퇴했던 정치적 민주주의도 2016년 촛불항쟁에 힘입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정치, 경제 민주화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노동에 관해서는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지난 10월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럽연합이 “노동기본권에 관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2010년에 우리나라가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하고 이 협약을 이행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역협정은 상품 교역에 관한 사항을 주로 다루지만 체결 당사국의 대외 정책에 따라 환경, 노동 등 사회적 가치를 상대방에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15개 중에서 노동 기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한-유럽연합(EU) FTA를 비롯하여 7개다.
여기서 말하는 국제 노동 기준은 어떤 것일까? 1998년 국제노동기구(ILO) 선언에서 기본 협약으로 규정한 내용을 말한다. 2018년 9월 현재 ILO 협약은 모두 189개이고, ILO는 그 중에서 8개 협약을 기본 협약으로 분류하고, 모든 회원국이 보편적으로 비준하도록 캠페인을 벌여 왔다. 기본 협약은 결사의 자유 보장, 강제 노동 금지, 아동 노동 금지, 균등 대우 등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협약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지위 향상을 위해 1919년에 설립한 국제연합(UN)의 전문기구다.
우리나라는 1991년 12월에 152번째 회원국으로 ILO에 가입하였다. 8개 기본 협약 중에서 아동 노동 금지와 균등 대우 관련한 4개 협약은 1991년도에 비준했지만,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관련한 4개 협약은 아직까지 비준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 ‘단결권과 단체교섭 협약(제98호)’를 비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라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우리나라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부터 8개 기본 협약 비준을 번번히 약속했지만 23년째 줄기차게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
현재 ILO 회원국 187개(UN 회원국은 193개) 중에서 8개 기본 협약을 모두 비준한 나라는 143개다. 5-7개를 비준한 나라는 33개이고, 4개를 비준한 나라는 우리나라, 중국, 오만 등 3개가 있다. 기본 협약을 하나도 비준하지 않았거나 3개 이하만 비준한 나라는 모두 8개이므로, 우리나라는 꼴찌에서부터 공동 9위인 셈이다. ILO 전체 협약 189개를 놓고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비준한 것은 29개에 불과하여 OECD 중에서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87호와 98호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OECD 국가 중에 한국과 미국밖에 없다.
우리나라 헌법 33조에서 말하는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ILO 기본 협약 87호, 98호와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이다. 말하자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내용을 노동법을 비롯해서 각종 하위 법령들이 위반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수준에서 볼 때 ILO 기본 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고, 나라의 품격과 신뢰에 직결되는 문제다. 문재인 정부도 ‘국정과제’와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에서 ILO 기본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했다.
내년 4월이면 ILO가 설립된 지 100년이 된다. 기본 협약만큼은 당장 비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매우 중요한 때다. 동시에, 삶의 질을 높이려면 노동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민 모두가 기본 협약 비준을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