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호] 칼럼 /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논란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2-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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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논란
일상 생활에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쓰지 않고 살기는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4개 이상의 인공위성에서 동시에 수신하는 전파를 이용하여 3차원 위치와 시간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을 위성항법시스템(GNSS, 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이라고 한다. GPS는 미국에서 개발하고 운용하는 위성항법시스템이며 러시아의 GLONASS, 유럽의 Galileo, 중국의 BDS 등 4개 국가(권역)가 각각 위성 30여 개로 위성항법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자기 영토에 국한된 지역항법시스템을 구현한 인도(NaviC, 위성 7개)와 일본(QZSS, 위성 4개)도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35년까지 3조 7000억 원을 투입하여 위성 8개(정지궤도 3개, 경사궤도 5개)를 고궤도(3만 2000~4만㎞)에 올려 한반도 인근에 지역항법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것이 KPS(Korea Positioning System,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2조 원, 중이온가속기 라온 1조 5000억 원을 합친 금액보다 큰 초대형 사업이다. 2018년 2월 정부가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KPS 개발계획을 반영한 후 2021년 6월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정부의 미래 투자 의지와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동북아지역에 일본과 중복된 지역 위성항법시스템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혁신적인 위성항법시스템 서비스가 민간 상용 서비스로 이미 출현함에 따라 KPS 사업을 재검증하자는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가 높다. 과거 두 차례에 걸쳐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한 것은 이런 사정뿐만 아니라 경제적 실익이 없었기 때문인데, 빠른 기술혁신으로 인해 경제성은 더 줄어든 셈이다.
관련 전문가들이 KPS 사업에 대한 실질적인 우려와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정부는 회의록이나 관련 기록들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뜨거운 쟁점 중에는 KPS 사업의 목적이 외국 시스템에서 독립한 시스템 구축 자체인지 탑재체나 원자시계 등 주요 장치 국산화인지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다.
독자 시스템을 구축한다면서 하드웨어 기준으로 사업 예산의 2/3를 외국산 수입에 쓴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국산화가 목적이라면 10기 이내 첨단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결과가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제대로 검증을 거친 적이 없다.
유럽연합(EU)처럼 아시아권역 국가들과 협력하여 글로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러려면 대규모 예산투입 이전에 충분한 국제공동 사전기획에 투자해야 한다. 한반도 인근에서만 수신할 수 있는 KPS 위성 신호를 활용하기 위해서 애플이나 중국 기업이 생산하는 통신장비에 KPS 칩 내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럽연합(EU)처럼 아시아권역 국가들과 협력하여 글로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러려면 대규모 예산투입 이전에 충분한 국제공동 사전기획에 투자해야 한다. 한반도 인근에서만 수신할 수 있는 KPS 위성 신호를 활용하기 위해서 애플이나 중국 기업이 생산하는 통신장비에 KPS 칩 내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통신 탑재체, 원자시계 등 개발에 집중 투자하여 국산화한다는 것도 고민거리다. 미국과 기술뿐만 아니라 산업 경쟁력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가진 전자통신 지상인프라와 관련 부품 역량을 활용하여 기존 위성항법시스템과 차별화된 기획을 한다면, 독자적 GPS 시스템을 보유하려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출시장 개척을 기대할 수는 있다. 영국 정부가 최근 GNSS 기능을 기대하면서 투자한 OneWeb이 좋은 사례이며, 프랑스와 실리콘 밸리에서도 이같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PS 기획 단계부터 산업체, 연구 현장과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정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3조 7000억 원이라는 예산을 투입하고 14년 후에도 국가 우주산업 역량 수준이 지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KPS 사업 심의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우리 전문가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정부가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다.”
정부 관료들이 과학기술정책을 쥐락펴락하는 한 과학기술자들은 제 역량을 한껏 발휘하기 어렵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요원할 것이다.
※ 이성우 전 위원장이 금강일보에 기고한 칼럼을 옮겨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