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호] 민주노총 / “윤석열 정권 퇴진” 부른 죽음, 양회동 열사 마석 모란공원 영면
작성자 | 원혜옥 | 작성일 | 23-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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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 퇴진” 부른 죽음, 마석 모란공원 영면
강압 수사에서 집회 자유 훼손으로 확전 … “끝이 아니라 시작”
노동절 아침 분신한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21일 영면에 들었다. 지난달 2일 사망 후 50일 만에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장례절차를 마무리했다. 장례는 끝났지만 고인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양회동 지대장은 유서에서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와 검·경의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부른 양회동 지대장 분신 사망은 노동계를 윤석열 퇴진 구호로 묶은 변곡점이 됐다.
양회동 지대장 장례는 빗속에서 엄수됐다. 이날 장례는 양회동 지대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미사를 시작으로 서대문구 경찰청 앞 노제와 광화문 세종대로 영결식으로 이어졌다. 양회동 지대장은 영결식 뒤 경기 남양주시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빗속에서 치른 영결식이었지만 노동자와 시민 6천명이 운집했다. 경찰이 영정차량을 막아 세우고 교통 통제를 소홀히 해 시민과 운구행렬 갈등을 방조하는 등 크고 작은 방해가 있었지만 장례는 대체로 큰 충돌 없이 마무리했다.
1973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양 지대장은 철근공이다. 건설현장 철근팀장까지 올랐지만 만연한 중간착취와 임금체불, 만성적 고용불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고 2019년 11월 노조 강원건설지부에 가입했다. 양회동 지대장은 유서에 “먹고 살려고 노조에 가입했다”고 썼다. 노조에서 활동한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고성·속초·양양·강릉 북부권을 담당하는 3지대장을 맡았다. 조합원의 일감을 따오는 게 양 지대장의 주된 업무였다고 한다. 본인의 공수(하루 업무)는 챙기지도 못해도 조합원이 일자리를 얻는 것을 기뻐하며 자부심을 느꼈다는 증언이 동료들로부터 쏟아진다.
양회동 지대장은 지난해 12월 건설노조에 대한 정권 차원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경찰조사를 받았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공갈 혐의가 적용됐다.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고 관철한 행위, 단체협약 체결에 따른 노조 전임비 지급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영장에 피해자로 등장한 4개 업체 중 2개 업체 현장소장은 처벌불원 탄원서를 썼지만 구속영장 청구를 피할 수 없었다.
이런 혐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노조활동을 형법으로 해석해 나타난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건설업 특성상)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확보하기 힘들다 보니 노조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일정하게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등 문제를 해결해 왔다”며 “그런데 정부는 건설업계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한 채 노조의 지배력 행사에만 집중한 채 사태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영장에는 차량으로 노동가를 송출하거나, 법령에서 정한 작업장 안전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산업안전수칙 의무 위반으로 고발한 점도 모두 ‘범죄 수법’으로 기재돼 있다. 노동자집회를 비롯한 별개의 노조활동을 한 데 엮어 채용과 전임비 요구를 위한 수단으로 욱여넣은 셈이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교섭은 상호 이해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노사 모두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이를 거쳐 일정한 선에서 타협을 하는 과정”이라며 “개별적으로 발생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교섭 과정을 강요죄나 공갈죄로 보는 것은 노사관계와 교섭 과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양회동 지대장은 노조활동을 불온시한 정권 아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돼 있던 노동절(5월1일) 오전 9시35분께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이튿날 사망했다.
양회동 지대장 분신 이후 정권의 대처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억울하다”는 분신 노동자의 외침에도 ‘노조 때리기’는 계속됐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11일 민당정 협의회를 열고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양회동 지대장 분신 사망 이후 ‘건폭’ 몰이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효과는 현장에서 드러났다. 건설노조와 체결한 단협 위반,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해고가 잇따랐다. 양회동 지대장이 활동한 강원건설지부는 조합원 1천명 중 600명 이상이 실직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는 노조에 대한 압박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경찰청은 올해 국가수사본부에 배당된 특진자 중 단일수사 부문에 가장 많은 인원을 ‘건폭 수사’에 할당했고, 최근 특진 인원을 50명에서 90명으로 확대했다.
‘사자 명예훼손’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양 지대장 분신 당시 이를 목격한 노조 간부가 분신을 방조했다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은 양 지대장 유서들이 서로 필체가 다르다고 기사화했다. 이후 유서 3통 모두 양 지대장이 작성한 것라는 필적감정 결과가 나왔고, 월간조선은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다른 언론 보도를 통해 강릉경찰서 관계자가 ‘분신 방조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이 밝혔음에도 여전히 기사는 그대로다.
정부는 이런 보도를 적극 활용했다. 양회동 지대장 분신의 의미를 희석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조선일보가 제기한 의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입을 통해 확산됐다. 원 장관은 “죽음을 동력 삼으려는 의도”라고 페이스북에 쓰는가 하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양회동 지대장 분신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양회동 지대장 형 회선씨는 영결식에서 원 장관 발언에 대해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 소식을 들었던 순간만큼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의무와 권리를 지키며 살아왔을 뿐인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나”고 외쳤다.
정권 차원의 강경대응이 이어지면서 ‘노조 때리기’가 ‘집회·시위 때리기’로 확전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1박2일간 건설노조가 서울 도심에서 연 집회가 계기다. 경찰은 이 집회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불법집회를 근절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불법집회 근절을 강조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사태는 노동권 관련 싸움에서 이제는 집회·시위의 자유 싸움으로 확전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정부·여당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고쳐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가 주최하거나 출퇴근 시간대 도심에서 개최하는 집회는 금지·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