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출연연 구조개편, 정부안 폐기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하라!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10-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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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서 |
출연연 구조개편, 정부안 폐기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하라!
-과학기술계 정부출연 연구기관 구조개편에 관한 공공연구노조의 견해-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청와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권력기관과 정부 부처가 자신들의 이해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2008년 이후 3년간 연구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연구하여 최적의 거버넌스(지배구조)를 확립하겠다고 하고서는, 그동안 정부 부처끼리 의견 을 조율하지 못하여 논의가 지지부진하더니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과학기술거버넌스개편 TFT>(작업반장 배태민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실 국장)까지 구성하면서 서두르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 국가전문연구기관
그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구조개편안의 요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능 개편, ‣연구회(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해체, ‣출연연 통폐합 후 단일법인화, ‣일부 출연연의 관련 부처 이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표1).
<표1>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요지)
1) 명칭 변경 : 정부출연연구기관 => 국가전문연구기관 2) 연구회 관련 규정 : 전면 삭제 => 연구회 해체 3) 국가전문연구기관의 임원의 임기 : 원장 5년, 이사와 감사 3년(각 1회 연임가능) 4) 부처별 국가전문연구기관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기술통합연구원(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명, 한의학, 해양, 표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식경제부> 한국융합기술원(전자통신, 기계, 화학, 전기, 철도기술, 에너지기술, 지질자원 +한국세라믹기술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부> 한국식품연구원 <국토해양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 연구조직의 기능 조정 및 정비(신설․통합․분리․폐지 및 인력의 배치․이동을 포함한다)에 관한 사항은 이사회에서 의결할 수 있음. |
출연연이 그간 줄기차게 요구하고 기대해 왔던 ▷과학기술 주무부처 부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확립, ▷출연연 정책 일원화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검토 과정에서 이와 같은 양 부처(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중심의 통폐합 방안은 ‘용두사미의 불완전 개혁’이며 ‘제도 보완이 없을 경우 부처 간섭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정부 스스로 낮게 평가했던 방안을 채택하고자 하는 것이다. 장고 끝에 악수라더니, 꼭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출연연 구조개편 진행 과정
출연연 구조개편이 진행된 과정을 잠시 되돌아 보자. 2009년 상반기에 지식경제부는 무려 26억원의 용역비를 산하 출연연에 떠맡기면서 ADL(Authur D. Little)사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ADL사가 진단한 출연연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7가지이다(☞표2).
<표2> 출연연 문제의 핵심원인(ADL 발표문에서 인용. 2010. 1. 7)
1) 범정부 국가 R&D Control Tower 기능 미흡 2) 기재부의 출연연 인력, 예산, 평가권 보유 3) 정부의 대 출연연 전문성 미흡 4) 과도한 경쟁 위주의 정부 R&D 예산 배분 시스템 5) ‘13+1’ 개별 법인 형태의 출연연 구조 6) 연구회 권한과 역할의 제약 7) 형식적인 출연금 R&D 성과 관리 |
보다시피, 위와 같은 지적은 모두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과학기술행정체계와 상위 거버넌스를 제대로 설계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 정책을 새롭게 펼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ADL사는 출연연에 대한 진단은 정부의 정책 실패에 무게를 두고서도 처방은 지식경제부의 연구용역 주문에 충실했다.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의 통합연구법인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지식경제부의 강압과 ADL사의 견강부회(牽强附會)식 결론은 출연연 현장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했다. 지식경제부는 청와대는 물론 출연연 구조개편보다 경영효율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던 교육과학기술부까지 끌어들여 2009년 10월 <출연연 발전을 위한 민간위원회>(민간위)를 출범시켰다. 출연연에 대한 일방적 구조개편의 책임을 민간위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의 책임과 연구현장의 비판을 피해가려는 정부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민간위는 ADL보고서와 연구현장의 여론을 참고하여 20개 출연연을 1개 통합연구법인(국가연구개발원)으로 합쳐서 국가연구개발위원회(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두는 방안을 지난 6월 하순에 청와대에 건의하였다. 같은 시기에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는 각 부처의 의견을 모아 민간위 안에 대비되는 안, 즉 출연연을 2개 통합연구법인으로 묶고(일부 출연연은 관련 부처 이관)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 산하에 두는 방안(☞<표1>에 정리된 안)을 제시하였다.
6월에 민간위안과 정부안으로 나눠진 출연연 구조개편방안은 지난 7월 이후 급속히 정부안으로 기울어졌다. 민간위안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예산편성권 또는 예산조정권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넘겨야 하고 지식경제부는 산하 출연연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이관해야 하기에, 양 부처가 민간위안에 반대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사실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출연연 구조개편을 어떤 식으로든 현 정권의 임기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처지에 양 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민간위안을 채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국 출연연 구조개편안은 정부안을 중심으로 최근에 임명된 청와대 미래전략기획관과 과학기술비서관의 조율노력이 가세하여 확정되기 직전 단계까지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도 없이 출연연만 뒤흔들 것이 자명한 구조개편안이 논의되는데도 최종 단계에 와서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행정편의주의와 부처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출연연은 다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출연연의 특성이나 연구주체인 과학기술자들의 사기를 감안하는 목소리도 정부 당국자에게 찾아보기 어렵다. 출연연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 구조개편안의 문제점
소귀에 경읽기가 되더라도 정부안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표1>과 같은 출연연법 개정과는 별도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기능을 재편하여 100명 정도가 상주하는 사무국으로 개편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가 아니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계획 등 정부가 건네주는 정책을 두말 않고 승인하는 통과의례기구로 전락했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폐지되고, 산하 3개 연구회가 2개로 통폐합되어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로 넘겨준 상황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이미 기능을 잃었다. 정부안에 따라 2개 통합연구법인(기초기술통합연구원, 한국융합기술원)과 독립법인으로 전환하는 출연연(과학기술정보, 기초과학지원, 천문, 항공우주, 원자력, 생산기술, 식품, 건설기술 등)이 각 부처 산하에 존치되면 사무국을 설치하더라도 딱히 바뀔 것은 없다.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해체한다고 한다. 연구회는 태생적으로 부처에서 독립된 출연연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자율관리기구로 출범했기 때문에 출연연이 각 부처로 배치되면 용도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가 각각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어떻게 유린했는지 획일적인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과정만 들여다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연구회 해체는 출연연 구조개편의 내용이 아니라 결과물인 셈이다.
기초기술 부문과 산업기술 부문별 통합연구법인을 추진하는 정부의 논리는 ‣부처 미션과 다수부처 미션을 해결할 수 있고, ‣부처-출연연간 매칭․연계로 부처 차원의 R&D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부처 소속을 통해 집중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순수기초-목적형 응용․개발연구를 분리할 것이고, ‣유사 기관간 통합으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며, ‣융복합 촉진 및 Critical Mass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국외 선진국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부처이기주의에 충실한 논리이다. 기초․산업간 구분도 쉽지 않을뿐더러 기초-산업간 칸막이 해체로 융․복합 연구를 촉진하자는 민간위의 통합추진 논리가 차라리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어울리는 것 아닌가?
핵심적인 문제는 통합연구법인은 유독 선택과 집중에 집착하는 우리 실정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의 뜻, 통합연구법인 원장의 의지, 통합연구법인의 HQ(headquarters, 행정지원본부)의 판단에 따라 선택과 집중해야 할 연구분야가 정해지면 그 밖의 다른 연구분야는 배제되거나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특정한 연구분야만 집중적으로 육성하면 정부가 강조해온 융․복합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더욱 요원해진다. 그 결과 연구직도 예외일 수는 없지만, 행정지원부서의 통합에 따른 지원인력 구조조정의 문제는 특히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정부 관련 부처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가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진되는 이번 구조개편은 정치적 목적이나 부처 이기주의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은 이번에도 정부가 지지 않을 것이고 출연연은 또다시 검증되지 않은 정부 정책의 실험무대에 올라 억울한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특별히 강조할 대목이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독성연구전문 GLP기관인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대한 구조조정은 GLP기관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범부처적인 활용 차원에서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간위와 정부는 연구계, 학계, 산업계 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지식경제부의 요구만을 무조건 반영하여 민영화(민간매각)로 결론을 지었다. 지식경제부는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에 대한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날치기 처리한 이사회 결정만을 내세우고 있다.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대한 민영화(민간매각) 방침은 반드시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확실히 질 수 없다면 철회하는 것이 옳다.
우리 노동조합의 요구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출연연 종사자들이 바라는 바, ▷과학기술 주무 부처를 부활하고,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마련하고, ▷출연연 정책을 일원화하여 부처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번 출연연 구조개편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고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일 것이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출연연 구조개편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활발하게 출연연 구조개편안 마련에 참가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정부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따르기만 했던 전체 출연연 종사자가 강력히 저항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우리 노동조합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거꾸로 달려가고 있는 정부에 맞서 조직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하여 대응할 것이다. 우선은 정부와의 면담 등을 통해 정부의 구조개편안의 문제점에 대해서 직접 설득하고 올바르게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다. 전체 조합원들의 뜻과 힘을 모아 대국회사업과 대국민 선전전 등을 통해 여론을 바꿀 것이다. 그래도 정부가 외면한다면 가능한 모든 투쟁을 조직하여 기필코 출연연의 안정적 위상과 자율적 연구환경을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확보할 것이다.
2010년 8월 1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