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정부출연연구기관의 새로운 조직 구조와 운영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 40주년을 맞이하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13-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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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출연연구기관의 새로운 조직 구조와 운영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 대덕연구개발특구 40주년을 맞이하며 -
올해는 1973년에 조성된 대덕연구개발특구가 4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정부출연연구소 5개, 대학 1개, 기업체 1개 등 총 7개 기관으로 시작한 대덕특구는 현재 정부출연연구기관 30개, 대학 5개, 기업체 1312개, 공공기관 11개, 국공립기관 14개, 기타 비영리기관 29개 등 총 1400여개의 기관이 입주해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6조 7000억원, 고용인원은 6만 4000여명에 이르며, 40년간 300조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창출하였다.
대덕특구는 그 동안 수많은 성과를 산출하였다. 디지털 전자교환기 ‘TDX’,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 인공태양 ‘KSTAR’, 휴먼노이드 로봇 ‘휴보’ 등은 세계를 놀라게 한 대표적 성과물이다. 그러나 4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의 목소리만큼이나 대덕특구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40년 동안 축적된 연구역량과 집적된 시설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연구개발 성과를 산출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일부에서는 특구 무용론, 정부출연연구기관 폐지론과 같은 극단적인 소리도 들려온다.
우리나라의 지난 40년은 급속한 변화의 시기였다. 개인은 물론 기업, 정부 그리고 국제환경까지 몇 년이 지난 것들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이러한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비켜나 있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5개에서 30개로 늘어나고, 직원과 시설의 규모도 대폭 커진 비약적 발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하나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자기복제하듯이 수십 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설립목적과 임무가 저마다 다르다고 하겠지만 외관을 달리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조직과 운영원리의 본질적 차이는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시기였던 7·80년대에 정부출연연구소의 주된 역할은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흡수 모방하는 것이었고, 당시의 조직과 운영방식은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서 모방전략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연구회 체제라는 변화를 시도하였으나, 부처에 종속되어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10여년의 세월을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포스트 캐치-업’의 요구는 높았으나, 각 정권이 주창한 국가혁신체제, 녹색성장, 창조경제의 슬로건에 휘둘리고 정부의 눈치만 보면서 본질적인 변화 없이 양적성장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가 40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경직된 모습이 지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예전에는 유효했을지라도 지금은 쓸모없는 조직구조와 운영방식을 지탱하려는 맹목성이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는 투입 연구비 대비 성과 부실이라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들볶지만, 실상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지금과 같은 처지에 이르게 된 것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예컨대 벤처육성, 녹색성장, 4대강 사업 등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동원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옹호하였으며, 현 정권의 창조경제 역시 재벌의 횡포는 간과한 채 이전과 동일한 동원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쉽게 동원되는 것은 그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원장은 정권의 보은인사, 낙하산인사, 정실인사로 선임되어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감사 역시 퇴직관료와 낙선한 정치인들의 자리보존용으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경영진은 직원의 의견을 대변하기보다는 원장의 심기를 살피기 분주하다. 직원들은 사기가 저하되고 체념하며 끝내는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다. 대덕특구의 30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본질상 동일한 구조 속에서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원장, 경영진, 직원들이 획일적인 운영원리를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 위기가 초래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위기는 연구인력과 운영제도의 측면에서도 아주 심각하다. 비정규직 문제는 갈수록 더욱 심화되어 연구 인력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왜곡된 인력운영으로 인해 연구역량 축적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정규직 또한 PBS, 상대평가제도, 이진아웃제, 누적식 성과연봉제 등 성과만을 강요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장기적 과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연구에 내몰려 왔다. 안정적이고 자율적인 연구 환경 조성에 앞장서야 할 부처와 연구회는 기관평가를 앞세워 획일적인 공공기관 지침을 강요하고 있으며 예산과 인력 운용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대덕특구를 하나의 생태계로 비유할 때 활로는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덕특구라는 생태계에서 우점종을 차지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지금처럼 그저 살아있는 화석으로 남아 있는 한 대덕특구는 더욱 불모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 임무, 역할이 아니다. 국민의 혈세를 잡아먹고 정권과 관료에 동원될 뿐인, 새로운 듯하지만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는 기초과학연구원과 같은 또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더더욱 아니다. 현재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하는 조직구조, 운영방식, 주인의식으로 충만한 구성원이다. 대덕특구 40주년인 오늘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다양한 조직구조와 운영원리에 대해 정부출연연구기관 종사자들에게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한편 자신들의 미래를 전적으로 책임지게끔 맡겨두는 일이다. 덧붙여, 정부 스스로도 수없이 강조했지만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정부가 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2013년 11월 2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