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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성명서> 국가과학기술정책, 관료의 일방적 지배에서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5-13

본문

<긴급 성명서>

국가과학기술정책, 관료의 일방적 지배에서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른바 “정부 R&D 혁신방안”에 대한 첫 번째 비판-


 

정부는 오늘(5/13)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정부 연구개발(R&D) 혁신방안’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한 우리 노동조합의 견해를 간략히 밝히고자 한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곧바로 연구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목조목 지적할 것이다.


1. 출연연 지배 구조를 우선 바로 세워야 한다.

 

비록 5년 지나긴 했지만 ADL(Arthur D. Little) 보고서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문제의 주된 원인이 모두 정부에게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범 정부 국가 R&D Control Tower 기능 미흡, 기획재정부의 출연연 인력.예산.R&D 사업 및 기관 평가권 보유, 정부의 대 출연연 전문성 부족, 과도한 경쟁 위주의 정부 R&D 예산배분 시스템 등, 2015년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내용들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도 이러한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더욱 악화되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폐지하고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출범시켰지만 R&D Control Tower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자문기구로 전락했을 뿐이다.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하여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탈바꿈했지만 ‘정부 R&D 혁신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정책의 주무 부처이지만 기재부와 산업부의 힘에 위축되어 그저 출연연에 대한 ‘갑’ 노릇을 하는 데만 머물고 있다. 정부 정책의 실패를 출연연에 전가하는 것이 전가의 보도일 수는 없다. ‘정부 R&D 혁신방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가 냉정하게 정책 실패에 대한 자기 반성과 비판을 앞세워야 한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국과심)를 재편하여 국과심 사무국을 미래부 내 별도 조직(가칭 과학기술전략본부)으로 분리 설치하고, 국과심을 지원하기 위한 과기정책 싱크탱크로 가칭 과학기술정책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칭 과학기술정책원은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정보수집.분석 기능을 통합하여 설립하겠다고 했다.

국과심과 가칭 과학기술전략본부는 10여년 전에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과학기술혁신본부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KISTEP과 STEPI는 기능이 서로 달라서 16년 전에 일찌감치 분리한 기관들이고 그 동안 엄연히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고, 기관 통폐합의 장단점 분석과 관련 기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특히 KISTI 정보수집·분석 기능의 통합 계획은 실효성이나 필요성에 대한 이유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노동조합은 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결기구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되살려야 하며, 국과위가 과학기술 기획, 예산, 평가, 조정 기능 등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다시 제안한다. 국과위 사무국은 각 부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부처별로 분산된 18개 R&D 기획·평가관리 전문기관(R&D전문기관)을 통합하여 국과위 산하에 두는 것도 혁신의 핵심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한 방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관료주의와 정부 각 부처의 이기주의적 행태이다. 18개 R&D 전문기관을 하나로 통합하여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두겠다고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이 단계적 추진 검토로 대폭 완화된 이유가 산업부 등의 완강한 반발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듯이, 기재부의 예산권 독점욕과 산업부 등의 R&D 집행권 관련 제 밥그릇 챙기기가 이번에도 ‘정부 R&D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


2.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가능하려면 무분별한 정부 간섭을 끊어야 한다.

 

‘정부 R&D 혁신방안’에는 출연연이 보유한 기술, 인력, 노하우를 활용하여 기업 기술 애로를 해결해 주는 ‘중소.중견 기업의 연구소’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정부가 산업기술연구 중심 기관으로 지정한 6개 출연연은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로 혁신하여 민간수탁을 2018년에 21%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현재의 독일 프라운호퍼연구회 체제가 확립되기까지 5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주무 부처의 변동 없이 장기적 관점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거버넌스 체제로 변화, 발전해 왔다. 수탁연구개발실적에 연동된 기관지원 모델인 ‘프라운호퍼 모델’을 시행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와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했다는 점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정부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R&D 투자가 가능한 여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민간 수탁 실적과 출연금 지원을 연계하겠다는 방침은 상용화 연구과제의 수행기관을 중소.중견 기업으로 하고 대학 및 출연연의 주관을 제한한다는 방침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출연연을 중소기업 R&D 전진기지화하겠다고 추진하면서 모든 가치와 기준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중소기업과 관련한 정책은 지난 30년간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대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직접 지원 정부 R&D예산은 20% 수준이다. 출연연과 대학을 통하여 간접 지원되는 예산 포함하면 전체 R&D 예산중 30% 수준이 기업에 지원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R&D 혁신방안’에서는 무조건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만 하고 있다. 중소.중견 기업 지원은 출연연 기능 중 중요한 하나이다.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R&D 지원을 혁신하려면 중소기업 기술 지원을 기관 설립의 주된 목적으로 해서 만들어진 산업부 소속의 15개 전문생산기술연구소의 기능과 역할, 지배 구조까지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소·중견 기업 지원에 대한 정부 정책의 실패까지도 출연연에 떠넘기려고 한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3. 소통과 공감대 형성 없이 강제로 밀어붙여서는 안된다.

 

이미 언론을 통해 ‘정부 R&D 혁신방안’에 대한 이러저러한 내용들이 알려졌지만 정작 연구현장에는 소문만 무성했다. 산업기술연구 중심기관으로 지목된 6개 연구기관(전자통신, 생기원, 전기연, 화학연, 기계연, 재료연)은 자료 요청을 받고 제출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우리 노동조합이 확인한 바로는, 각 출연연 원장들은 자신들의 기관 고유 임무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고 심지어 정부가 이 방안을 발표할 때까지 전혀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주요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출연연의 기능과 예산 구성이 크게 변화되고 심지어 출연연 통폐합까지 추진하면서 정부는 관련 당사자들에 대해 일체의 의견 수렴도 없이 일방적이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국과심에서 논의했던 기록도 없다. 몇 차례 토론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결과가 반영된 흔적도 없다. 오로지 정부 관료들이 결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따라오라는 식이다. 

이번 정부의 R&D 혁신방안은 많이 부족하다. 이전 정부들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부는 작년부터 공공기관 정상화를 빌미로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출연연 종사자들의 사기를 무참히 짓밟아 왔다. 이제는 경제위기를 타개한다는 명분으로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정부R&D 혁신 방안’을 내놓고 출연연의 기능과 임무를 제멋대로 난도질하겠다고 한다. 우리 노동조합은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

출연연 개혁과 혁신의 핵심은 관료주의와 부처 이기주의 타파, 그리고 출연연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우리 노동조합은 연구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모아 대안을 제시하고 투쟁할 것이다.

2015년 5월 13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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