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국책연구기관은 퇴직고위공무원의 노후를 보살피는 복지시설인가?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15-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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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안세영)는 경악스러운 공문을 소관 국책연구기관에 보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경인사연’이라 함) 경영지원실장 김이교가 발신인으로 되어 있는 이 공문의 제목은 ‘전문경력인사 활용인원 수요조사’이다(첨부자료 참조). 이 공문에 따르면, 경인사연은 ‘국책연구기관의 정책대안 개발 역량 향상과 연구성과의 법제화 제고를 위해 정책현장 경험을 보유한 전문경력인사(퇴직공무원)를 활용’하기 위해 「전문경력인사 전문성활용 프로그램」을 추진 중에 있다.
이 프로그램의 개요를 살펴보면, 지원대상은 ‘퇴직 후 3년 이내의 행정․입법부 고위공무원으로 연간 최대 50명’이며, 경인사연 소관 23개 국책연구기관, 2개 부설기관, 1개 대학원이 이들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지원내용은 전문경력인사(퇴직공무원) 1인 인건비로 월 300만원의 연구장려금(연간 3,600만원)을 지급하며, 이 인건비는 경인사연에서 전액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원기간은 최대 3년이며, 경인사연은 퇴직공무원 1인당 7평 이내의 사무공간(연구위원 연구실 기준)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작년에는 공공기관의 소위 ‘방만경영’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1단계 가짜 정상화를 내걸고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후생복지의 축소를 강제하였다. 올해에는 2단계 가짜 정상화를 내걸고 공공기관에 대하여 누적식 성과연봉제, 퇴출제(이진아웃제), 임금피크제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이것은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수준과 고용조건을 악화시키고 그 불안정성을 크게 증폭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인사연은 ‘전문경력인사 활용인원 수요조사’라는 그럴 듯한 제목의 공문을 보내, 퇴직고위공무원을 ‘정책현장 경험을 보유한 전문경력인사’로 포장하여 예산 지원하면서 소관 국책연구기관에서 받아들여 활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경인사연에게 묻는다. 관피아, 정피아에 대한 국민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여 갈 곳이 없어진 퇴직고위공무원들의 노후생활을 보장해 주는 곳이 소관 국책연구기관인가? 퇴직고위공무원들은 상명하복이라는 공무원사회의 질서에 성공적으로 적응했을 정도로 몸에 밴 권력지향형․권력순응형 태도를 갖고 있어, 창조적 정책대안을 발굴해야 하는 국책연구기관에서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예산구조상 정부부처의 연구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책연구기관의 약점을 고려하면, 퇴직고위공무원들은 국책연구기관에서 활용은커녕 처치 곤란한 짐(내부 연구과제에 편승 등)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그동안 국책연구기관에서 이런 사례들을 보아 왔다. 퇴직고위공무원들에게 정말로 쓸 만하고 필요한 연륜과 경험이 있다면 연구과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에 따라 그때그때 활용하면 될 일이다. 전문가층이 그다지 두껍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런 자질을 가진 퇴직고위공무원이 있다면 얼마든지 찾아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경인사연의 공문에서 드러나듯, 국책연구기관에 일방적으로 할당하여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일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이들에 대한 처우는 국민정서상 너무 과도하다. 퇴직고위공무원들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공무원연금이 보장되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연구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월 300만원을 일괄 지급한다는 것은 소수의 퇴직고위공무원들에게 특권적 처우를 지속하려는 꼼수이자 한심한 작태로 보이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방만경영이 아닌가? 더구나 연구위원급 연구공간을 퇴직공무원에게 제공하라는 경인사연의 요구는 이 사업의 저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경인사연은 소관 국책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무가 있다. 경인사연이 추진 중에 있는 「전문경력인사 전문성활용 프로그램」은 경인사연 본연의 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며, 국책연구기관을 퇴직고위공무원들의 노후생활을 보살피는 복지시설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이에 우리 노동조합은 박근혜정부와 경인사연이 허다한 문제를 안고 있는 「전문경력인사 전문성활용 프로그램」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아울러 박근혜정부와 경인사연이 이 프로그램을 철회하지 않고 계속 추진할 경우 우리 노동조합의 모든 힘을 모아 싸울 것이며, 이로 인해 발생할 모든 사태의 책임은 박근혜정부와 경인사연에 있음을 밝혀둔다.
2015년 4월 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